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카치 에일 (문단 편집) == 역사 == 스코틀랜드에서 맥주를 즐긴 역사는 무려 BC 30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오크니 제도]]의 스카라 브레(Skara Brae) 유적지에서 5천 년 전의 단지에서 보리와 약초 성분이 나왔다.] 고대 영국의 주민인 픽트족에서부터 [[켈트족]]이 맥주를 만들 때 보존성을 위해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약초를 첨가하기도 했다.[* 참고로 스코틀랜드는 최근 고대 맥주 부흥 운동이 진행중인 지역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글래스고]]나 [[에든버러]] 등 [[잉글랜드]]와 접한 저지대에서 양조장이 성행했으며 에든버러와 알로아의 주요 교역품 중 하나가 바로 맥주였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의 기후상 [[홉]]을 재배할 여건이 잉글랜드보다 훨씬 열악한 까닭에 홉을 대부분 잉글랜드에서 수입해야 했고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홉 시세 문제나 홉 수출을 틀어막는 등 빅엿을 자주 먹은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그때마다 다른 지역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국내에 필요한 분량을 충당할 수는 있었지만 이조차도 한계가 있었다.] 지금도 스카치 에일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최소한으로 홉을 넣되 보존성을 늘리고 맛의 밸런스를 잡는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몰트는 충분하지만 홉이 부족하다보니 어찌보면 필연적인 결과였다. 1707년 선포된 연합법 이후로 맥주 수출로 엄청난 재미를 보게 되는데 현재도 운영중인 테넌트, 벨헤븐 등이 이 시절의 회사로 당시 주세가 다른 지역에 비해 낮게 책정되었다.[* 이는 몰트에 세금이 부가되지 않아서였다.] 주세의 경우 대영제국 시절의 실링 은화로 과세되었고[* 숫자 뒤에 '''/-'''표시가 되어 있는데 / 앞의 숫자는 실링을 뜻하며 -는 0펜스를 의미한다. 지금은 스카치 에일의 상징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부피 기준은 당시의 나무통(케그) 하나의 용량이었던 54 영국 갤런(245.5 리터)을 기준으로 4개 등급으로 나누어졌다. * '''라이트(Light)''': (60/-) 알코올 3.5% 미만. * '''헤비(Heavy)''': (70/-) 알코올 3.5%~4.5% * '''엑스포트(Export)''': (80/-) 알코올 4.0%~5.5%. * '''위 헤비(Wee Heavy)''': (90/-) 알코올 6.0% 이상. 이 중 위 헤비의 경우 가장 도수가 높은 스타일로 현대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서는 기본적인 스카치 에일이 되었다.--하여간 과격한 걸 좋아한다 미국놈들-- 현대에는 전통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토탄으로 훈연시킨 피티드 몰트(Peated Malt)를 첨가하거나, 강렬한 피트향으로 유명한 '''아일라 위스키 배럴'''에 숙성시키는 방법까지 동원되어 양조되고 있다. 사족으로 상관없을 것 같지만 [[벨기에]]에서 스카치 에일을 양조하기도 한다. 사실 이상할 것도 없는게 스코틀랜드에서 수출된 맥주를 소비하던 지역 중 하나가 베네룩스 일대였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일을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이 결정적이었다. 서부 플란데런 지방에서 영연방군 소속 [[하이랜더]] 연대 등의 스코틀랜드 출신 군인들을 위해 양조한 것이 기원이라 한다.--고향의 맛-- 현재도 벨기에에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럭저럭 소비되는 에일 중 하나로 뿌리를 내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